가교駕轎, 가구家丘, 가구가대可久可大, 가구야록家狗野鹿, 가구종평賈寇終平

가교[賈郊] ()나라의 시인 가도(賈島)와 맹교(孟郊)의 병칭이다. 이들이 시풍이 비슷한 데다 청절(淸切)하고 처고(淒苦)한 정서가 많기 때문에 가수교한(賈瘦郊寒)이라 일컬어진다.

가교[駕轎] 임금과 세자의 장거리 행차에 사용하는 가마를 이른다. 임금의 보편적 교통수단이었던 연()을 간편하게 개량한 것으로, 말을 앞뒤에 한 마리씩 두어 안장의 양편에 들채의 끝을 걸어 끌게 하였고 황색의 복장을 한 하인들이 앞뒤 양쪽에 채가 흔들리지 않도록 누르며 갔다.

가구[街衢] 길거리.

가구[歌謳] 노래를 부름이다.

가구[可口] 맛이 좋아서 입에 맞음이다.

가구[家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변변찮은 고향 사람이라는 뜻의 겸칭이다. 공자가 성인인 줄을 모르는 어떤 노()나라 사람이 우리 동쪽 집에 사는 구라는 사람[我東家丘]”이라고 마구 불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을 이른다. <顔氏家訓 慕賢>

가구[駕屨] 성상의 부르심. 임금이 명하면 신하는 수레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신발을 허둥지둥 신고 달려 나가고, 나중에 수레가 뒤쫓아 오면 그 수레에 올라타고 조정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향당(鄕黨)임금이 오라고 명하면 신하는 수레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달려가야 한다.[君命召 不俟駕行矣.]”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가구[駕屨] 왕명(王命)을 띠고 내려가는 사신(使臣)의 행차를 뜻하는 말이다.

가구[佳丘] 현 안동시 와룡면(臥龍面) 가구리이다.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이 살았던 마을인 지내리(池內里) 인근이다.

가구가대[可久可大] 현인(賢人)의 업적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오래 갈 수 있는 것은 현인의 덕이요, 광대해질 수 있는 것은 현인의 업이다.[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가구소[街衢所] 순검군(巡檢軍)에게 체포된 범금자(犯禁者)를 구치(拘置) 치죄(治罪)하는 일종의 구류소(拘留所)와 같은 것이다.

가구야록[家狗野鹿]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범행품(梵行品)또 집을 지키는 개[家狗]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들에 사는 사슴[野鹿]은 사람을 무서워해서 도망을 친다. 성내는 마음은 집을 지키는 개처럼 몰아내기가 어렵고, 자비로운 마음은 도망가는 사슴처럼 잃기가 쉽다. 그래서 이 마음을 고르게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又如家犬不畏於人, 山林野鹿見人怖走, 瞋恚難去如守家狗, 慈心易失如彼野鹿, 是故此心難可調伏]”라고 하였다.

가구종평[賈寇終平] 가복(賈復)과 구순(寇恂)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공신(功臣)이다. 가복의 부장 하나가 영천(穎川)에서 사람을 죽이자, 그곳 태수(太守) 구순이 그를 처형하였다. 가복이 내가 그와 똑같은 위치로서 지금 이 같은 모욕을 당했으니, 그를 만나면 찔러 죽이겠다.”고 하자, 구순이 이 내막을 알고 만나 주지 않았다. 그의 생질 곡숭(谷崇)이 기회를 보아서 해치우겠다고 나서므로, 구순이 이는 국가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나가서 가복을 맞이하는 척하다가 급병이 났다는 핑계로 되돌아섰다. 뒤에 광무제(光武帝)가 이 사실을 알고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못하였는데, 두 호랑이가 어찌 서로 싸울 수 있겠는가. 내가 이를 조정하겠다.”라고 하여, 두 사람이 서로 화해하고 벗이 되기를 맹세한 고사이다. <後漢書 寇恂列傳>

가구향리폐[家狗向裏吠] 집에서 기르는 개가 집 안 쪽을 향()해 짖는다는 뜻으로, 은혜(恩惠)를 원수(怨讐)로 갚음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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