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류葛藟, 갈류덕화葛藟德化

갈류[葛藟] 갈류는 칡이나 등나무 등덩굴 종류의 식물을 가리키는데, 시경(詩經) 주남(周南) 규목(樛木)장에 남산에 굽어 늘어진 나무 있으니, 칡덩굴이 얽히었네. 즐거우신 군자는 복록에 편안하도다.[南有樛木 葛虆纍之 樂只君子 福履綏之]”라고 하였고, 그 주에 문왕(文王)의 후비(後妃)가 질투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여러 첩들이 아름답게 여겨 이 시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후비(后妃)의 덕이 아주 훌륭하여 중첩(衆妾)들을 포용하는 것이 마치 교목에 수많은 갈류가 얽혀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갈류[葛藟] 갈류(葛藟)는 칡덩굴인데 많은 공족(公族)으로 공실(公室)을 보호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문공(文公) 7년 조()칡덩굴도 오히려 근본을 비호할 줄 알기 때문에 군자가 그것을 종족에 비유하는데, 더구나 나라의 군주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葛藟猶能庇其本根 故君子以爲比 況國君乎]”라고 한 것에 대한 공영달(孔穎達)이 주소(注疏): 갈류에서 위비까지. 정의: 여기서 인용한 갈류는 시경(詩經) 왕풍(王風) 갈류편(葛藟)이다. 저기 모씨의 전에서는 흥이라고 하였고, 여기에서는 군자들은 비로 여긴다.’라고 하였다. 다만 비의 은미한 것을 흥이라 하고, 흥의 드러난 것을 비라 하니, 비가 흥과는 천심이 다를 뿐이다.[葛藟至爲比. 正義曰此引葛藟, 王風葛藟之篇也. 彼毛傳以之爲興, 此云君子以爲比者. 但比之隱者謂之興, 興之顯者謂之比, 比之與興, 深淺爲異耳.]”라고 하였다.

갈류[葛藟] 칡넝쿨. 시경(詩經)의 편명(篇名)으로, 살 곳을 잃고 떠도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시경(詩經) 왕풍(王風) 갈류(葛藟)길고 길게 자라난 칡넝쿨이여, 하수의 물가에 자라 있도다.[綿綿葛藟 在河之滸]”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세상이 쇠하고 백성들이 흩어져서 향리(鄕里)와 가족을 버리고 떠돌면서 갈 곳을 잃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갈류[葛藟] 시경(詩經) 왕풍(王風) 갈류(葛藟)는 모두 3장으로, 갈류(葛藟)칡넝쿨 등넝쿨이라는 뜻이다. 진덕수(眞德秀)는 왕족이 주 평왕(周平王)을 풍자한 것으로 본 모서(毛序)를 따른 반면, 주희(朱熹)는 세상이 쇠하고 백성들이 흩어져서 그 고향과 가족을 버리고 떠돌아다니며 갈 곳을 잃은 자가 탄식하며 지은 시로 보았다. 평왕은 서주(西周)의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의 태자로, 이름은 의구(宜臼)이다. 유왕이 의구의 친모인 신후(申后)와 의구를 폐위하고 포사(褒姒)와 포사의 아들 백복(伯服)을 각각 후()와 태자로 봉하자, 두 사람은 신후의 친정인 신()나라로 달아나 견융(犬戎)과 연합하여 주()나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유왕이 죽고 평왕이 즉위하였다. 이 전쟁으로 인해 서주의 도읍인 호경(鎬京)이 불에 타 낙읍(洛邑)으로 천도하였다. 일반적으로 평왕 원년(기원전 770)을 춘추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갈류덕화[葛藟德化] 왕비가 질투심이 없어서 아랫사람들을 잘 거느림을 뜻한다. 시경(詩經) 주남(周南) 규목(樛木), 문왕(文王)의 비()인 후비(后妃)가 질투가 없어 중첩(衆妾)이 그 덕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칭송하여 남산에 아래로 굽은 나무가 있으니, 칡넝쿨이 얽혔도다. 화락한 군자여, 복록이 편안하네.[南有樛木 葛藟纍之 樂只君子 福履綏之]”라고 하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