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밤나무 접붙이다 저물녘이면 아버지 풀피리 부셨다는 산비탈   밤나무 고목으로 속 비워 가고 엄니는 기억이 까막하신데   오르락내리락 밤 줍는 청설모   남의 밤 서리할까 , 자식 걱정 풀피리 소리를 알기나 하나   술 반 흙 반 사시다 흙에 가신 아버지   그 나이 내일인데 술내만 풍겨 버겁데기 깊은 주름 틈바귀 쐐기 알집에 미안하다 .   - 안상길 -

죄인囚 - 별거別居

당신은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원고가 되어 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 했다 .   나는 변론도 없이 자해 自害 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   당신 , 행복하신가 ? 나는 , 행복한가 ?   억겁의 세월을 돌고 돌아도 지나간 날은 다시 오지 않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해 봐도 흘러간 마음은 돌릴 수 없다 .   당신이 나로 인해 불행했다면 나는 그대로 죄인이다 . 한 번밖에 없는 그 인생 망친 죄인 囚 이다 .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자유 自由 의 감옥을 깰 방법이 없다 .   - 안상길 -  

세상이 달라지면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설원/잡언/ 參矢而發참시이발

세상이 달라지면 사리 ( 事理 ) 가 변하고 , 사리가 변하면 시세 ( 時勢 ) 도 변하며 , 시세가 변하면 풍속도 바뀌게 마련이다 . 이 때문에 군자 ( 君子 ) 는 먼저 그곳의 토지를 살펴서 농기구를 만들고 , 그곳의 풍속을 관찰하여 민풍 ( 民風 ) 을 조화시키며 , 뭇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교화 ( 敎化 ) 의 방향을 정한다 . 어리석은 사람이 활쏘기를 배울 때에는 , 하늘을 향해 높이만 쏘기 때문에 그 화살이 다섯 걸음 안에 떨어지고 마는데 , 이를 모르고 다시 쏠 때도 역시 하늘을 향해 높이 쏜다 . 세상이 변하였는데도 그 거동을 고치지 않는 것은 비유컨대 마치 멀리 활쏘기를 배우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 눈으로 가을철에 새로 난 짐승의 가는 털끝까지 보는 자가 태산 ( 泰山 ) 은 보지 못하고 , 귀로 맑고 탁한 음조 ( 音調 ) 를 듣는 자가 우레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 그 뜻하는 바가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 백 사람이 매듭을 푸는 뿔송곳을 가지고 풀면 노끈을 견고하게 묶을 수 없고 , 천 사람이 옥사 ( 獄事 ) 를 비방하면 바른말로 판결할 수 없으며 , 만 사람이 모두 옳지 않다고 하면 이름난 선비라도 어쩔 수 없다 .  【 설원 : 잡언 】 ★★★ 今夫世異則事變 , 事變則時移 , 時移則俗易 ; 是以君子先相其土地 , 而裁其器 , 觀其俗 , 而和其風 , 總眾議而定其教 . 愚人有學遠射者 , 參矢而發 , 已射五步之內 , 又復參矢而發 ; 世以易矣 , 不更其儀 , 譬如愚人之學遠射 . 目察秋毫之末者 , 視不能見太山 ; 耳聽清濁之調者 , 不聞雷霆之聲 . 何也 ? 唯其意有所移也 . 百人操觿 , 不可為固結 ; 千人謗獄 , 不可為直辭 , 萬人比非 , 不可為顯士 . 【 說苑 : 雜言 】

흙방을 만들며 / 법정 스님

올 봄에 흙방을 하나 만들었다 . 지난해 가을 도자기를 빚는 이당거사 利堂居士 의 호의로 흙벽돌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산골에 얼음이 풀리자 실어왔다 . 4 월 한 달을 꼬박 방 한 칸 만드는 일에 골몰했다 . 산 아래 20 리 밖에 사는 성실한 일꾼 두 사람과 함께 일을 했다 . 이전까지 나뭇광으로 쓰던 자리에다 방을 들였는데 , 이번에는 아궁이를 기존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잡았다 . 새로 만든 방의 위치도 위치지만 어떤 바람에도 방 하나만은 군불을 지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 나는 이곳에 와 살면서 거센 바람 때문에 군불을 지피는 데 너무나 애를 먹어 왔기 때문이다 . 내가 그동안에 겪어 온 경험과 두뇌 회전이 빠른 일꾼의 솜씨로 이번에 만든 방은 불이 제대로 들인다 . 나는 당초부터 예상한 바였지만 , 처음 방구들을 놓아본다는 일꾼은 불이 제대로 들일지 내심 불안해했다 . 그도 그럴 것이 , 애써 만들어 놓은 방에 불이 안 들이면 말짱 헛일이기 때문이다 . 방이 완성되어 처음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날 우리는 기대 반 불안 반이었다 . 그러나 불길이 훨훨 소리를 내며 빨아들이는 걸 보고 함께 손뼉을 쳤다 . 그때 일꾼은 장난말로 불이 잘 들이면 구들장 놓는 ‘ 쯩 ’ 을 하나 써달라고 했는데 , 형식적인 종이쪽지보다도 나는 그의 솜씨를 믿을 수 있게 됐다 . 방이 고루 따뜻해졌으니 성공한 것이다 . 개울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은 불이 너무 잘 들여 , 굴뚝으로 열기가 그대로 빠져나갈 염려가 있다 . 그래서 굴뚝 위에 바닥 기왓장을 하나 엎어 놓았다 . 방안의 보온을 위해 필요한 장치다 . 이 방은 시멘트를 전혀 쓰지 않고 구들장을 비롯해 모두 돌과 찰흙으로만 되었다 . 구들장 위에 흙을 한 자쯤 덮었기 때문에 군불을 지핀 지 네댓 시간이 지나야 방바닥이 뜨뜻해 온다 . 이렇게 되면 사나흘 동안은 불을 더 지피지 않아도 방안이 훈훈하다 . 특히 이런 방은 추운 겨울철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 구들장 위에 흙을 두텁게 깔지 않으면 , 군불을 지피

장작 벼늘을 바라보며 / 법정 스님

장마가 오기 전에 서둘러 땔감을 마련했다 . 한 여름에 땔감이라니 듣기만 해도 덥게 여길지 모르지만 , 궁벽한 곳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다 . 오두막에 일이 있을 때마다 와서 도와주는 일꾼이 지난 봄에 일을 하러 올라왔을 때 , 땔감이 다 되어 간다는 말을 했더니 , 며칠 전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나무를 실어다 놓았다 . 어디서 구했는지 땔감으로는 가장 불담이 좋은 참나무다 . 어제 오늘 통나무를 난로와 아궁이에 지피기 좋도록 톱으로 잘라 함께 벼늘을 쌓았다 . 제재소에서 피죽만 한 차 더 실어다 놓으면 , 두어 해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 운동 삼아 그때그때 통장작을 도끼로 패서 쓰면 될 것이다 . 이제는 일반 가정에서 아궁이에 나무를 지필 일이 거의 사라져 , 땔나무에 대한 기억과 관심도 소멸되어 가지만 , 산촌의 재래식 단독 가옥에서는 땔나무에 대한 필요가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다 . 지난날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 마당 한쪽이나 뒤란에 나뭇벼늘이 그득 쌓여 있으면 저절로 집 안에 훈기가 감도는 것 같다 . 그리고 장작 벼늘의 질서 정연한 모습은 그 집안의 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 가끔 내 글에 ‘ 일꾼 ’ 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20 리 밖에 사는 믿음성 있고 착실한 30 대 젊은이다 . 내가 이 오두막에 온 이듬해 봄 묵은 밭에 나무를 심기 위해 산림조합에서 묘목을 한 차 사서 싣고 와야 할 일이 있어 , 제재소에 문의를 했더니 한 젊은이를 소개해 주었다 . 처음 전화로 사정 이야기를 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믿음이 갔다 . 그의 소형 트럭으로 묘목을 실어온 다음날 , 나무를 심기 위해 그가 다시 올라와 일을 하면서 나더러 아무개 스님이 아니냐고 물었다 . 내 글을 읽고 책에서 본 얼굴을 기억해 낸 모양이었다 . 나는 웃으면서 혼자만 알고 있지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당부를 해두었다 . 그때의 당부는 오늘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